되새김질/책2015. 7. 21. 21:52

김대중 대통령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의견(생각)이 있는 사람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의견이 없는 사람이다"고 할 정도로 생각을 중시했다. 생각과 관련한 세 가지의 ‘세 번 원칙'도 있었다. 


먼저,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세 번 생각한다는 것이다. 첫째, 이 일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생각한다. 둘째, 나쁜 점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셋째,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한다. 


다음으로, 상대가 있는 경우다. 그때에도 세 번 정도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이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가? 두번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무슨 생각, 어떤 입장일까? 세 번째, 이 두 가지 생각을 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 26p, <대통령의 글쓰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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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김질/책2015. 7. 21. 21:48

문학'을 '과학'으로 바꾸어 읽어봐도 그 뜻이 통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무지개와 프리즘> 책 말미의 <소설과 사상>, 1998년 가을에 실린 인터뷰 글에서 고 이윤기 선생의 인상적인 답변들을 몇 개 옮겨 적어봤다. 


“문홍술: 최근의 신세대 작가들이 형식 실험을 한답시고 소설 양식을 멋대로 파괴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이윤기: 할 사람은 하라고 하세요. 그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앞 짧은 농부들이 땅을 망치듯이 문학의 종사자들이 문학의 터전을 망쳐서는 안 되겠지요. 독자들 싸대기 때려서 쫓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할 사람은 해야겠지요. 하지만 나는 그런 작가들을 볼 때마다, 데생 연습이 끝나지 못한, 혹은 매우 허술한 비구상 화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나 같으면 데생을 더 하겠어요. 이것은 개인의 문학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 한국 문학 얘깁니다. 우리 한국인들,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입말 따로 글말 따로 써 오지 않았습니까? 입말이 글말로 정착한 지 백 년 밖에 안 되었지요. 내가 데생이라고 하는 것은 물려받은 전통의 확립이 아닌, 새로운 전통의 수립입니다. 실험하는 작가들도 있어야겠지만 전통을 일구는 작가들도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지요. 오늘날의 많은 작가들은,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격투기 연습도 채 되어 있지 않은 주제에, 싸워야 할 적의 기량도 모르는 채 한시바삐 콜로세움으로 뛰어나가고 싶어 안달을 부리는 검투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문홍술: (전략) 한국 문학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시고 그 타개책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윤기: (전략) 문학이 위기를 맞은 시기일수록 문학다운 문학에 희망이 있다. 나는, 실제로는 못하고 있으면서도 생각만은 이렇게 해요. 역사를 몇 장 들춰보면 문학이 인문학 제 분야에 사유의 원자재를 공급하던 행복한 시대가 있었어요. 회복해야지요.”


“문홍술: (전략) 지금 영어 상용론에 대해 논란이 분분합니다만 미국 생활도 하시고 또 우리말로 소설도 쓰시는 입장에서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이윤기: 나의 숙제는 한국어입니다. 영어는, 외국어는 세상을 엿보는 방편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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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김질/책2014. 7. 23. 01:23


책, <거인들의 생각과 힘: 과학과 왕립학회 이야기>에서 발췌, 정리한 내용. 


어떻게 학회를 만들어갔고 학풍을 만들어갔는지, 실제 어떤 활동을 하면서 과학 및 과학활동 관련 분야에서 어떻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는지 주목해 볼만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 왕립학회(Royal Society)의 시작:

1660년 11월 말 어느 눅눅한 평일 저녁, 십여 명의 학자들이 당시만 하더라도 크게 유명하지 않았던 스물여덟 살의 젊은 청년 크리스토퍼 렌의 천문학 강의를 들으러 런던의 그레셤 대학의 강의실에 모였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들은 유용한 지식의 축적을 장려하기 위해서 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았다. 처음에는 그런 모임을 그저 '학회(Society)'라고 불렀다. 


왕립학회는 1660년 11월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에 감명을 받은 12명의 지식인들에 의해서 인류에게 '유용한 지식'을 증진시키고 축적한다는 목적으로 창립되었고, 1662년 찰스 2세로부터 공식적으로 '자연 지식의 증진을 추구하는 런던의 왕립학회'가 되었다. '과학(Science)'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전의 일이었고, '물리수학적, 실험적 문예의 진흥'이 그들의 공식적인 목표였다. 


- 왕립학회의 특징 


1) 왕립학회의 빠른 성공을 가능하게 해 준 요인: 적극적인 국제화


왕립학회의 첫번째 학술지인 <철학회보: 세계의 여러 중요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창적인 사람들의 지식과 연구와 노력에 대한 설명 (Philosophical Transactions: Giving Some Accompt of the Present Understanding & Studies and Labours of the Ingenious in many Considerable Parts of the World)>는 왕립학회가 특정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립적이고 국제적인 단체였음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말피기나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호이겐스와 같은 사람들의 논문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2) 왕립학회의 회원: 신분의 격차를 초월, 과학적 성실성과 실험에서의 창의성을 보여주고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킴으로써 세상을 바꿔놓은 과학자들에 제한된 회원의 선임


특히, 드러나지 않은 성과를 찾아내는 일에서 영웅적이고 자랑스러운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3) 첫 목표의 지속적인 추구: 과학 뿐 아니라 과학 저술 및 다양한 과학 관련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영향력을 발휘함  


재정문제 때문에 진짜 과학자라고 하기는 어려운 사람까지 회원으로 받아들인 시절도 있었지만 대체로 왕립학회의 영향력과 명성을 되살려냈고 최고 수준의 과학 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지금도 왕립학회의 관심사는 세상에 알릴 영감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350종의 연구 지원사업을 통해 전 세계에서 3000명이 넘는 과학자들에게 연구를 지원하고 있고, 다양한 메달과 상을 수여하며, 강연과 토론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유명한 여름 과학 전시회도 개최하고 있다. 7종의 학술지를 통해 논문들을 발표하며 전 세계의 91개 과학원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96개의 위원회가 중요한 연구를 진흥시키고, 훌륭한 성과를 기리고, 교육을 진흥시키고, 정부 기관들이 현명하게 활동하도록 만들고,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증진시키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선임된 회원들은 정책을 만들고 관심 분야를 찾아내며 그 관심 분야를 무한하게 설정하고 있다. 



Reference: <거인들의 생각과 힘: 과학과 왕립학회 이야기> 빌 브라이슨 편집 | 이덕환 옮김 (까치,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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