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효과

Miscellany 2009/05/30 01:28


무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에 우리가 얼마나 휘둘리는지.
자기의 권리(투표권)를 방치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댓가를 지불한 후에 얻은 것을 쉽게 잊어서는 안된다.

이 모든 것이 쉽게 잊혀질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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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uerystar


돈과 여유와 문화. 돈과 제대로 뒷받침해주는 제도 하에서의 무서운 실력.

겉보기 환경은 거의 비슷함에도 차이가 존재하는건 결국은 이것들 때문인가. 그럼 이건 정말 우리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인데. 개미들이 손에 돈다발을 쥐고 있는 거물들과 같은 방식으로 투자도 할 수 없거니와 그래서는 망할테니..

mass media에 짠 하고 떠오르는 것을 보고 따라가는 것은 어찌보면 요거 우량주다라고 말할 때 그제서야 거기에 투자를 할까 생각하는 개미와 같다. 물론 그거 쫓아가서 잘 될 수도 있다. 어떤 큰 주제를 처음 시작했다고 먼저 시작한 사람이 그걸 통째로 점유해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시작할수록 fundamental하고 좋은 문제를 찾아 풀어낼 가능성은, 그래서 leading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크다. 인간 대가리 거기서 거기, 도토리 키재기라..

모 topic을 survey하다보니 이미 이게 굉장히 industrial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라 모 나라에서는 5년쯤 전에 대형 사업단이 만들어져있고 교수 여러명이 연합하여 일을 하고 있다. 뭔가 억울하다..

'우리가' 먼저 시작하려면, initiation을 가지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건가?

1. (공학에 국한시켜 생각해본다면 최근에 든 생각은) 학교는 일단 산업체 현장에서 기술적으로 어떤 이슈를 가지고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그냥 안고가는 문제가 있다. 학교의 approach는 현장의 approach와는 다르다. 기대하는 역할도 다르다. 현장에서는 아무래도 경제성의 측면에서 제한을 갖는다. 적은 투자로 대량 생산을 해낼 수 있어야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이익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현장의 문제에서 fundamental하게 스터디해야 할 문제들로부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world class university가 아니라 technology-based world class entrepeur가 많아지고 그런 시장과 산업이 활성화되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는 더 중요하겠다. S업체에 계시는 분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쪽은 거의 일본에서 한다 하는 것을 들여와서 일을 진행한다고 한다. 기본 방침 자체가 그러면 으음... 할 말이 없다.. orz

또 교육이 잘 되어야 하고..
하나만 잘 되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2.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도 소홀히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돈이 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이것에 왜 세금을 투자해야 하는지 사람들의 암묵적인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우리의 정책이 필요하다. <파스퇴르 쿼드런트>에서 미국의 과학 정책을 보며, 세세한 디테일을 따라가는 것은 방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분명히 다른 상황, 스케일 면이나 자금 면에서 분명히 다른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 정책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가 필요할런지도 모른다.

3. 좀더 사람에 직접적으로 가까운 일을 생각해본다면, 건드려야 할 것은 역시 출판 문화와 연구소다. 전문서 번역도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고 연구서 시장이 어느정도 확보되어야 한다. 사기업의 학술재단에서 지원하던 번역이나 연구서 사업이 축소되고 폐지되는 것을 보면 아쉽기만 하다. 공공재 투자의 원칙은 여기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 같다.

4. 3에서 더 나아가서 우리가 만드는 학술저널의 질이 높아져야 할 것이다. NCS가 연구의 quality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출간하는 저널 중에 leading 해나갈 수 있는 저널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5. (as graduates) 개미는 개미의 방식대로 열심히 뛰는 수 밖에 없다.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몸을 움직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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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 역자인 최홍규 교수가 서문에서 이야기했든 번역도 엄연히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을만한 것인데 번역의 작업은 무시되기 일쑤다. 일본에 갔을때, 일본에 일본어로 번역된 수 많은 책, 그리고 일본인 학자들이 직접 쓴 책들이 서점에 한가득이었던 것은 일본이 그나마 과학이든, 공학이든 자기 학문을 해나갈 수 있는 힘의 기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그 정도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국역이 아닌, 많은 우리 학술서, 전문서가 서점에 들어차 있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좋은 책들이 있겠지만 그런 책이 소수인 것은 확실하다) 좋은 책은 번역이라도 잘 되어야 한다. 원서와 번역서. 읽는데 드는 시간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잘 번역되어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책을 볼 수 있을테니. 

일전에도 번역책의 부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강독회에서 <도덕감정론> 번역된 책을 보려고 책을 찾다보니 이 책, 품절인데다 도서관에도 없어 건너건너 아는 사람이 다니는 학교 도서관에서 겨우 책을 빌려 제본을 했다. 책을 구한 것에 그나마 참 다행이다 싶다. 역사에 남은, 그리고 아직까지 시대와 함께 살아숨쉬는 책들이 이렇게 사장되어간다. <도덕감정론>은 아담스미스의 초기 저작으로 사회 경제가 돌아가는 것에 대한 조명에 앞서 인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스미스 선생의 고민과 향기가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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